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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취미

[시 사]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아프카니스탄#탈레반)

아프가니스탄의 비극

 

 

 

1.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국제뉴스는 온통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것에 관한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아는 2001년 9.11 테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9.11 테러가 터지자 미국은 탈레반에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의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요구를 하였지만, 탈레반은 미국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았고,  그래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리고 10년동안의 수색과 작전 끝에 2011년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한다.

 

 

airforce-17에 탑승한 640명의 아프간 국민/출처:DEFENSE ONE

미국의 주요 도시인 뉴욕을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던 빈 라덴을 사살 시키며 미군도 더 이상 아프간에 주둔할 명분이 없어 졌다. 2014년 오바마 정부는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시키려 시도했다. 희생의 계속된 반복과 급속하게 불어나는 전쟁 비용으로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기엔 미국으로서도 큰 부담이었던 것이다. 

 

 

탈레반의 저항과 공격에 미군과 민간인 희생이 늘었고 탈레반과의 전쟁은 계속 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스스로 자국을 지킬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엔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내 철군 계획은 취소되었다.

오바마 대통령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도 미군을 해외에 주둔시키는 것이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철군을 서두르고 싶어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이유로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을 원했고 2020년 2월 탈레반과 협상 했음을 선언했다. 협정에는 탈레반 점거 지역 내에서 알카에다 혹은 다른 무장 세력이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평화 회담을 진행하는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한편 2021년 재임한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 철수 계획을 발표하였고, 불과 넉 달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해 버렸다. 미국이 탈레반을 제재하고 쫓아 내기 위해 쏟아부은 지난 20년간의 노력과 돈이 물거품이 되는 것과 같았다. 

 

2. 탈레반

파슈토어로 '학생'을 뜻하는 탈레반은 1990년대 초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뒤  파키스탄 북부에서 등장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남서부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장시켰고 1995년 9월, 이란과 접해있는 헤라트 지방을 점령하고, 1년 후 부르하누딘 라바니(소련에 저항했던 아프간 반군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을 일으킨 인물 중 하나) 대통령의 정권을 전복시키며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탈레반은 1998년까지 아프간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소련이 철수한 뒤 각종 내분과 무자헤딘의 지나친 폭정에 지쳤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사실 처음에는 탈레반의 등장을 환영했다. 탈레반은 세력을 확장하던 초기에는 부패를 근절하고 불법을 억제하며 안전한 도로와 지역개발에 힘을 쏟아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살인범과 간통범에 대한 공개처형, 절도범에 대한 사지절단 등 엄격하고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거나 지지하여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탈레반은 남성들은 수염을 기르고 여성은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를 입게 했다. 텔레비전, 음악, 영화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를 금지했고, 10세 이상 소녀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반대했다. 이러한 인권침해와 문화 파괴 행위로 탈레반은 사회를 분노시켰고, 특히 악명 높은 사례 중 하나는 2001년 아프간 중부의 유명한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것이다. 당시 탈레반의 미개한 행위에 대해 전 세계가 분노했다.

 

 

지금 현재 탈레반이 현재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탈환하고 미군에게 협조했던 민간인들을 학살하거나 공개처형하고 있다. 많은 아프간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고, 난민들의 탈출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탈레반을 상대로 어떠한 대처를 하고 아프간 민간인들을 어떻게 탈레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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